중국 국적의 H 씨가 한국에 법인을 세운 뒤 중국산 2차 전지 양극재를 들여와 포장과 라벨만 교체해 ‘국산’으로 위장, 대미 수출에서 중국산에 부과되는 25% 관세를 회피하려다 적발·송치되었습니다. 본 글은 사건 전말과 함께 한국을 경유하는 원산지 세탁이 왜 위험한지, 실무 판별법과 법적 대응, 그리고 참고용 미국 관세 변화표와 국제 통계(지표형)를 한눈에 정리합니다.
사건 개요: 중국산 양극재, 포장만 바꿔 ‘국산’ 둔갑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실질적 가공 없이 표기만 바꾸는’ 전형적 원산지 세탁 수법입니다. 중국인 H씨는 국내에 법인을 설립한 뒤 중국에서 생산된 2차 전지 양극재를 수입했습니다. 이어 국내 물류창고에서 상자, 라벨, 금속 명판 등 외형 표기를 교체하고, 서류상 원산지 표시를 ‘KR(대한민국)’로 바꾸어 수출 문서를 준비했습니다. 이러한 표기 변경만으로는 국제 규범상 ‘실질적 변형(Substantial Transformation)’ 요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즉, 원자재나 부품이 새로운 성질·용도·HS코드가 형성될 정도의 가공이 이뤄져야 원산지 변경이 인정됩니다. 양극재처럼 고부가 소재는 HS코드 변경 기준(예: CTH/CTSH 또는 특정 공정 요건)과 부가가치(VA%) 요건을 동시에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단순 재포장·라벨 교체로는 애초에 국산화가 불가능합니다.
세관은 입·출고 기록, 포장재 구매 내역, 생산설비 가동 데이터, 통관 물류 흐름, 거래처 커뮤니케이션 로그 등을 교차 분석해 실가공이 없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선하증권(B/L), 상업송장(Commercial Invoice), 원산지증명서(C/O) 간 표기 불일치, 포장재 인쇄 품질과 부착 흔적 등 정황 증거를 다수 포착했습니다. 그 결과 관세법 위반(허위신고·원산지표시법 위반)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수출 건은 사후 추징·과태료 및 향후 통관 리스크 관리 대상에 올랐습니다. 본 건의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바로 대중(對中) 25% 고율 관세 회피입니다. 이는 특정 제품군에서 가격 경쟁력을 단번에 바꾸는 요소이기에 불법 유혹이 커집니다. 그러나 적발 시 추징금·벌금·형사처벌·수출입 제한 등 경제적 손실이 이익을 압도합니다.
한국을 경유한 원산지 세탁의 파장: 신뢰·시장·정책 리스크
첫째, ‘Made in Korea’ 신뢰도 하락입니다. 글로벌 바이어는 한국산에 대해 품질·윤리·컴플라이언스 준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원산지 둔갑 사례가 늘면, 선의의 한국 기업까지 일괄적으로 강화심사 대상이 되거나 선적 전 검사(PSI), 서류 추가 요구, 납기 지연 및 비용 증가라는 연쇄 부담을 지게 됩니다. 둘째, 통상 리스크 확대입니다. 주요 교역 상대국이 한국을 ‘경유형 세탁 허브’로 인식하면 특정 품목군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나 추가 관세(세이프가드성 조치), 적합성 인증 강화 등을 도입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셋째, 산업 생태계 왜곡입니다. 불법적으로 관세를 회피한 제품이 덤핑성 가격으로 시장을 잠식하면, 정직하게 가공·투자·고용을 창출한 기업이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 혁신 투자가 위축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로드맵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넷째, 금융·평판 비용 상승입니다. 불법 리스크가 높은 산업·기업군의 보험료와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며, ESG 평가에서도 공급망 투명성 결함으로 감점 요인이 누적됩니다. 결국 한 건의 ‘라벨갈이’가 산업 전반의 신뢰 프리미엄을 잠식하는 셈입니다.
원산지 세탁이 기승을 부리는 배경: 관세·제재·브랜드 프리미엄
원산지 세탁은 관세 장벽이 높고 무역 제재가 촘촘할수록 유혹이 커집니다. 대중 25% 관세는 전기차·배터리 관련 밸류체인의 수익성에 직격탄이며, 이 격차를 ‘제3 국 경유’나 ‘서류상 변신’으로 메우려는 시도가 반복됩니다. 또한 특정 국가 라벨이 가지는 브랜드 프리미엄(품질·안전·환경·윤리 이미지)은 판매 단가와 마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불법 사업자는 포장·라벨 변경이라는 저비용 수단으로 이 프리미엄을 ‘무임승차’하려 합니다. 물류·전산 환경의 고도화도 역설적으로 악용됩니다. 글로벌 포워딩·풀필먼트 인프라, 전자문서 시스템의 확산은 합법적 효율성을 높였지만, 일부는 진실을 감추는 ‘속도’로 전용됩니다. 결국 실질 가공과 데이터 진실성, 그리고 국가 간 공조가 균형을 이뤄야만 악용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현장 판별법 & 실무 체크리스트: ‘서류-물류-공정’ 삼중 교차검증
① 서류 일관성: 상업송장, 포장명세서, 원산지증명서, 선하증권, 수입 신고서의 HS코드/수량/중량/원산지 표기가 모두 일치하는가? 사소한 숫자·약어 불일치가 반복되면 경고 신호입니다.
② 운송 경로 합리성: 생산지와 구매처, 최종 수요지 관점에서 불필요한 경유가 있는가? 이유 없는 환적·보세창고 체류는 의심 포인트입니다.
③ 포장·라벨 품질: 인쇄 번짐, 스티커 재부착 흔적, 금속 명판 교체 자국, 바코드/QR코드 재라벨링 등 물리적 단서를 확인합니다.
④ 공정 증빙: 실질 가공이 주장된다면 작업지시서, 설비가동 기록, 작업자 투입, 전력 사용, 불량률, 생산일지, 검사성적서, 원재료 투입·손실률 등 ‘시간-공정-산출’ 데이터가 맞물려야 합니다.
⑤ 가격 정상성: 관세를 합산해도 경쟁이 가능한가? 불가능한 가격이라면 관세 회피 또는 축소 신고를 의심합니다.
⑥ 파트너 실사: 경유지 벤더의 설비·인력·공정 역량을 현장 확인(또는 제3자 감사)으로 검증합니다. 이메일·샘플·사진만으로는 입증이 곤란합니다.
법적 대응과 제재: 추징·벌금·수출입 제한, 형사책임까지
허위 원산지 표시, 허위 C/O 발급·사용, 라벨갈이는 관세법·대외무역법·원산지표시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입니다. 행정 제재로는 과징금, 통관보류, 특혜관세 환수(사후심사)와 함께, 일정 기간 수출입 제한 및 신용도 하락(관세평가·리스크 등급)이 뒤따릅니다. 형사 영역에서는 사기, 위조·변조문서 행사 등이 병과 될 수 있으며, 대표자·실무자 모두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FTA 특혜의 소급 박탈은 파급이 큽니다. 다수 선적이 소급 추징되면 현금흐름이 급격히 악화되고, 거래처와의 분쟁(위약금·클레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수입국 관세당국의 ‘검사 강화 리스트’ 등재로 납기·물류 리스크가 상시화됩니다.
미국 관세 변화 요약표(참고·발표 기준)
아래 표는 공개된 정책 흐름을 바탕으로 한 요약·참고용 정리입니다. 최신·세부 품목별 세율은 품목·HS코드·시점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실제 거래 전 반드시 공식 관보·통관 자문으로 재확인해야 합니다.
시기 | 주요 조치(요지) | 대표 품목 예시 | 관세 수준(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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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 Section 301 대중 추가관세 도입(리스트 1~4) | 기계·전자·부품 다수 | 대체로 10% → 25%로 상향 |
2020~2023 | 대부분 추가관세 유지, 일부 예외·유예 갱신 | 산업재 중심 | 25% 수준 유지(품목별 상이) |
2024(발표) | 대중 전략 품목 추가 인상 발표 |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반도체 등 | EV 최대 100%, 태양광·배터리·반도체 일부 인상(품목별 차등) |
2025(시행·예고 혼재) | 전략 품목 단계적 반영 | 배터리 관련 중간재 등 | 25% 유지 또는 상향 적용 사례 존재(품목·시점별 상이) |
※ 위 내용은 품목 일반화 요약입니다. 실제 세율은 HS코드·원산지 규정·우회 규정·면제 현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원산지 국제 통계(지표형·참고)
공식 국제기구·세관 단속 통계는 국가·연도별 집계 방식이 달라 직접 비교가 어렵습니다. 아래 표는 공개 보고서들의 공통 경향을 지수화(=2020년을 100으로 기준)해 참고용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실제 정책·집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내부 리스크 지표 구축 시 참조 수준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지표(2020=100) | 2021 | 2022 | 2023 | 2024 |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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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 원산지 위반 적발 건수 지수 | 108 | 123 | 141 | 158 | 168 |
우회수출(제3국 경유) 의심 신고 지수 | 112 | 130 | 149 | 165 | 177 |
배터리·전기차 밸류체인 관련 지수 | 115 | 138 | 160 | 183 | 195 |
* 2025 수치는 연중 집계 진행 상황을 반영한 참고 지표로 이해하십시오. 정식 통계 공표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방을 위한 기업 로드맵: 설계-실행-검증-대응
1) 설계(Design): 제품별 원산지 결정 기준(CTH/CTSH, RVC, 규정된 공정)을 제품 개발 단계부터 설계에 반영합니다. 원재료 소싱·공정 경로·위탁가공 범위를 문서화하고, 잠재적 경유 국가의 통관 요건과 라벨링 요구사항을 미리 매핑합니다.
2) 실행(Operate): 공정별 작업지시와 설비 가동 로그, 원재료 투입·손실률, 검사 성적서, 포장·라벨 이력(라벨 ID, 인쇄 배치)을 ERP/MES로 자동 수집합니다. 서류는 전자서명·타임스탬프를 활용해 변경 이력을 남깁니다.
3) 검증(Assure): 분기별 내부 감사와 공급업체 실사를 정례화합니다. HS코드 사전 심사, 사후심사 대응 시나리오(샘플 제출, 현장검사 동선, 인터뷰 리스트)를 미리 마련합니다. 수출 전 ‘원산지 셀프 체크리스트’(서류 일치성·가격 정상성·경유 합리성)를 실행합니다.
4) 대응(Respond): 의심 정황 발견 시 즉시 출하 중지-원인 분석-자진 신고(필요시)로 피해 확산을 차단합니다. 세관 문의에는 단일 창구로 일관 답변하고, 추징·소송 리스크를 고려해 증빙 보존 기간을 연장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파트너 계약서에 원산지 준수·손해배상·감사권 조항을 반영합니다.
결론: ‘라벨 한 장’이 신뢰를 흔든다—지금 강화해야 할 것은 투명성
H 씨 사례는 단순 포장 변경이 산업 신뢰를 얼마나 훼손하는지 보여줍니다. 한국 경유 원산지 세탁이 기승을 부르면 ‘Made in Korea’ 전체가 의심받습니다. 관세·규정·데이터 정합성을 바탕으로 공급망 투명성을 강화하고, 의심 징후는 즉시 차단 해야 합니다. 오늘의 한 건이 내일의 거래조건과 국가 신뢰를 좌우합니다.